잠언맛나

지혜롭고 겸손한 의인들의 영광과 어리석고 교만한 악인들의 수치.

가스펠 가디언엔젤(Gee프렌드) 2024. 4. 13.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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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3:27 선을 베푸는 것이 네 손의 권세에 있을때, 마땅히 받을 자들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라.

잠3:28 네가 가진 것이 있거든 이웃에게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말하지 말라.

잠3:29 네 이웃이 네 곁에서 안전하게 거하는 것을 볼 때에, 그를 모함하지 말라.

잠3:30 사람이 너를 해치지 아니하였으면 까닭없이 그와 다투지 말라.

잠3:31 너는 압제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길에서 아무것도 취하지 말라.

잠3:32 이는 마음이 비뚤어진 자는 주께 가증하나, 주의 은밀하심은 의로운 자와 함께 있음이라.

잠3:33 악인의 집에는 주의 저주가 있으나, 의인의 처소에는 주께서 복을 주시는도다.

잠3:34 진실로 그는 비웃는 자를 비웃으시나, 겸손한 자에게 는 은혜를 베푸시느니라.

잠3:35 현명한 자는 영광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나, 어리석은 자가 높임을 받는 것은 수치가 될 것이니라.

 

 

오늘 본문의 잠언말씀은, 이웃사랑의 계명실천으로 베풀고 이웃을 해하거나 다투지말며 오만방자하고 마음이 뒤틀어진 압제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주 하나님의 은밀하심이 함께하던 요셉처럼 주님과 동행하며 선한 길을 걸으라고 훈계합니다. 왜냐면 의인의 처소엔 축복이 임하지만, 악인의 거처하는 집엔 저주가 임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참으로 주님께서는 조롱당하지 않으시므로 성도들을 비웃고 신성모독하는 자들을 비웃으시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겸손한 자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기에 솔로몬왕처럼 '지혜'를 구하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왕이 지혜를 구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열왕기 말씀에 잘 나와있습니다. 통치자로 권좌에 오르고나서 많은 백성들을 다스리고 재판하는데 지혜가 부족한 자신을 인식하고서, 부귀영화든 오래사는 장수(長壽)든 원수갚음이든 이런것들을  구하기보다는 현명하게 처신하여 민생과 정치의 현안을 슬기롭게 풀어나갈 수 있는 능력인 지혜를 구하고자 마음을 먹고서 이것을 구하여서, 하나님께서 이를 기뻐하시고 역대 왕들중에 가장 많은 지혜가 임하였고, 뿐만 아니라 솔로몬왕이 구하지않은 부귀영화의 복까지 덤으로 받았으며 또 보너스로, 솔로몬왕의 부친이자 상왕이었던 다윗왕이 걸었던 길대로 걸으면 생명을 길게하는 장수의 복까지 주신다고 언약(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겸손은 모든 복의 근원이며 특히 영혼에 지혜를 채우는 비결입니다. 잠언 15장 33절에,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존귀에 앞서 겸손이 있느니라. 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구하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은 다름이 아니라, 주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이웃사랑의 계명들을 지키고 훈계를 알아듣고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지혜이며, 잠언의 핵심 키워드 자체가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겸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능과 권세와 재능이 뛰어나도, 창조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보다 훨씬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지혜를 받는것은 모든 힘(영생, 능력)이 되므로, 이것이 복의 근원이 됩니다. 가장 행복한 길은 이웃사랑 계명을 실천하고 겸손하게 지혜를 간구하여 받는 것입니다. 서론은 이만하고 본론 들어가겠습니다.

 

첫째, 지혜를 받으려면 이웃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합니다. 선을 베풀 힘이 있을때에 마땅히 받을 이웃들에게 지갑을 닫지말고 5,000원짜리 10,000원짜리 한장이라도 돕도록 합시다. 그정도의 돈으로도 가난한 이웃들에겐 큰 힘이 됩니다. 적어도 끼니 한그릇 정도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력이 되면 5만원짜리로도 도울 수 있고, 더한 기부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헌금하는 돈의 8~90%가 쓰여야 할 사용처는, 목사의 은행계좌가 아니라 가난한 불우이웃들에게 돌아가야 성경적인 경제적 거래순환이 되는 것이고, 이렇게 돈이 돌고돌아야 '돈맥경화'라는 경제적 성인병 사회를 예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음의 달란트가 적어서 복음을 전할 여력이 되지않으면 돈으로 베풀어서 도울 수도 있는것 아니겠습니까? 요한일서 3장 17-18절에, 누가 세상의 재물을 가졌는데 자기 형제의 궁핍한 것을 알면서도 그를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어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거하겠느뇨? 나의 어린 자녀들아, 우리가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리로 하자. 라고 하였고, 야고보서 2장 15-17절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의 양식조차 없는데 너희 중에 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평안히 가라.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라."고 하면서 그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그와 같이 행함이 없으면 믿음만으로는 죽은 것이라. 라고 하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가진 힘이 있으면 신앙인으로서 도와야 합니다. 어디 이상한 자선모금함 등에 기부하지말고(기부금 사용처가 불분명하므로...), 다이렉트로 이웃을 찾아가서 도우십시오. 물론, 오른손이 하는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계명을 의식한다면, 돕는 티를 내지말고 조용히 물질로 도우면 됩니다. 돈이 아니더라도 난방용 연탄이 될수도 있고 라면이나 김장김치 등의 먹거리로도 도울 수 있으며 휴지나 비누 칫솔 등의 생필품 등등 물질로 도울 방편은 많이있습니다. 이웃사랑은 말과 행동이 합쳐져, 다시말해 화목한 덕담에 물질베풂이 더해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합니다. 진실한 선행은 말로만 사랑할 게 아니라, 도울만한 경제적 여력이 허락하는데로 적게나마라도 도우면 됩니다. 고인물은 썩듯이 돈은 너무아끼면 탐욕과 우상이 됩니다.(잠11:24-26)

 

둘째, 거칠고 사악한 범죄자를 부러워하지말고, 까닭없이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어차피 마음이 뒤틀어진 범죄자들은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가고있으며, 그들의 삶이 비열한 행동으로 잘먹고 잘사는척은 하더라도, 속으론 마음에 불평불만 가득한 불만족의 삶입니다. 아무리 돈많고 사회적 위치가 높아도 불행하다면 그야말로 그런 부와 명예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 것입니다. 주 하나님께서는 요셉처럼 의로운 성도들과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밀하심(secret)이라는 것은, 예언의 말씀이 활동력으로 움직여서 역사를 이루어가는 것이라고 다시말해 그 성도들의 삶 자체의 살아있는 역사가 주님의 은밀하심이 함께하는 것이라고 저는 해석합니다. 시편 105장 17-20절에, 주께서 그들 앞에 한 사람을 보내셨으니 종으로 팔렸던 요셉이라. 그의 발은 차꼬에 상했으며 그가 쇠사슬에 매였으니 주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까지 주의 말씀이 그를 연단하였도다. 왕이 보내어 그를 풀어 주었으니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케 하였도다. 라고한 것처럼 주님의 은밀하심은 요셉과 함께하며 말씀으로 단련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악한 자들은 말씀(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역사하실까요? 요한계시록 17장 17절에,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일치시켜 그들의 왕국을 그 짐승에게 주도록 하셨으니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까지니라. 라고 한 것처럼 말씀이 활동력으로 의인과 악인을 이끌어가시며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사악한 자들의 교만과 탐욕은 멸망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51장 13절에, 너, 오 많은 물들 위에 거하고 재물이 풍부한 자야, 네 끝이 이르렀고 네 탐욕의 분량도 그러하니라. 라고 한 것처럼 음녀 바벨론 성(城)의 교만과 탐욕은 끝이 있다고 예언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죄인들을 부러워하지말고, 미래 내세의 절대영원불멸의 낙원인 천국을 소망함이 복입니다. 잠언 23장 17-18절에, 네 마음으로 죄인들을 부러워하지 말고 온종일 주의 두려움 가운데 있으라. 이는 분명히 마지막이 있겠고 또 네 기대가 끊어지지 아니할 것임이라. 라고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이 죄를 짓는것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것은 그들의 탐욕은 끝이 있고, 의인의 좋은 미래는 절대영원불멸합니다.(잠10:25)

셋째, 겸손한 자의 지혜로움엔 영광과 축복이 있고 교만한 자의 높임받음엔 수치와 저주가 있습니다. 겸손한 자들의 좋은 점은 근본적으로 '지혜'를 받을 준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지혜를 받으려면, 우선적으로 단련을 받아야 할 성품은 '겸손'입니다. 겸손해야 자기의 무능함과 부족함을 알고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경을 읽어가며 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지혜로 성품을 단련하고 선한 사역에 쓰임받아 세상을 선하고 이롭게 바꾸면 2배의 달란트로 결실하고 생명(절대영원불멸)의 면류관의 보상까지 받기때문에, 지혜의 유용함은 많이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지혜는 절대영원불멸의 생명과 안식과 평강의 은혜가 임하는 근원적인 지성(智性)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성도여러분들을 악인들이 비웃더라도, 이러한 악인들을 주 하나님께서 비웃으시고 오히려 겸손과 선행을 실천하는 성도들에게는 영광의 고난을 짊어짐이 되므로 그야말로 경건한 성도들은 고난도 가벼운 영광의 명예이며, 미래 내세엔 2배의 축복과 천국낙원 보상까지 예비되어 있으니 2중 3중으로 축복이 임하는 것이며, 반대로 교만한 악인들은 현세(現世)에서도 불평불만으로 의인들을 조롱하거나 갑질하면서 살아도 실제로 속마음은 허무함과 환멸감 그리고 불만족의 괴로움으로서 아무리 부와 명예도 만족이 안되는 저주의 삶이며 특히 내세에서는 그들을 위해 '둘째사망'이라는 유황불호수 심판이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잠언 19장 29절에, 심판은 비웃는 자들을 위하여 준비된 것이요, 매는 어리석은 자들의 등을 위하여 준비된 것이니라. 라는 말씀처럼 심판은 교만하고 거만하게 비웃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악인들의 몫입니다. 그래서, 지혜롭게 선을 행하면서 겸손하게 주 하나님을 사모하는 의로운 성도들에게는 복이 임하여 자기를 낮추는 겸손함은 영광의 상속유업의 보상을 받습니다. 반면, 어리석은 교만한 자가 높임을 받는것은 민망한 수치가 되는데, 이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이 오히려 어리석게 '하나님은 없다'(시14:,시53:)라고 오만방자하게 행하며 비열하게 살다가 스스로 몰락하여 멸망의 길로 인도받기 때문입니다. 요약하면, 겸손은 가장좋은 복인 '영적 지혜'(절대영원불멸)의 복과, 영예의 복을 받습니다.

이제 말씀을 요약하고 끝맺고자 합니다. 지혜를 얻으려면 이웃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하고, 사악한 범죄자를 부러워하지말며, 까닭없이 다투지말고, 겸손해야 한다고 오늘 잠언 구절들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지혜이신 조물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얻으려면, 도덕적 선행의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도덕적 선행을 실천하면 지혜를 얻고, 또 그 얻은 지혜로 더욱 의롭게 도덕적 선행을 하면 더 많은 지혜가 임하는 축복을 얻는 선순환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 그러나 그가 더 많은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그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거절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느니라. 라고 하였고,  베드로전서 5장 5절에, 이와 같이 너희 젊은이들아, 장로에게 복종하라. 너희 모두가 서로 복종하고 겸손함으로 옷 입으라. 이는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심이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더 많은 지혜를 얻는 은혜를 누리려면, 지혜가 더 많이 자랄 수 있도록 더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혜를 얻을때마다 더더욱 하나님을 경외하는 계명실천의 신앙생활을 함으로서 생명나무에 이르는 권리를 얻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 그의 계명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들이 생명 나무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또 그 문들을 통하여 도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니라. 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인생의 자랑의 욕구를 갈망함에서 벗어나야 절대영원불멸의 지혜(생명력/능력)로 영광을 얻습니다. 지혜는 멀리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책에 이미 기본적인 가르침은 충실하게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아직 캐내지못한 지혜와 지식의 보물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미워하여 시기하거나, 배우자외의 이성과 간음하거나, 사기도둑질로 약탈하거나, 거짓증언하거나 기만하거나 이웃의 아내나 소유를 탐내거나 등등으로 욕망의 노예가 되지말고, 성경에 기록된 복음의 신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복음의 신비는 잠언 말씀에도 비유와 비사로 기록되었으므로, 이 숨겨진 지혜와 지식의 보물을 조물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믿고 이웃사랑을 실천함으로 캐내는 저와 성도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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