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맛나

아들(이스라엘)아, 아버지(주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가스펠 크리에이터 2024. 4. 23.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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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7:1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고 내 계명들을 간직하라.

잠7:2 내 계명들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잠7:3 그것들을 네 손가락에 묶으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잠7:4 지혜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을 네 친족 여인이라 부르라.

잠7:5 그리하면 그것들이 너를 낯선 여인으로부터, 그녀의 말로써 아첨하는 낯선 자로부터 지켜 주리라.

 

 

우리 성도들이 성경을 상고(탐구, 연구)하는 이유와 목적은 결코 죽지않음을 얻기 위함입니다. 즉, 절대영원불멸의 생명의 면류관을 조물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보상을 받기위하여 성경을 읽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아버지(하나님)의 말을 지키고 계명들을 간직하여 굳게 붙들어잡으면 절대무한 무궁영생을 얻어 산다고 강조하면서 주님의 법을 눈동자를 지키듯이 굳게 지키라고 잠언은 말씀합니다. 그 법규와 계명의 말씀들을 손가락에 묶는것은 반지(언약의 고리)처럼 여기라는 것인데, 말씀을 지켜 간직함으로 인한 육체의 욕구의 속박이면서도 일종의 우아한 장식물로서도 기능하는 것이 바로 손가락을 묶는 반지의 가치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영생의 말씀인 계명들(마19:17)은 지켜 순종하는 그 자체로 생명의 언약과 명예가 됨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계명을 마음판에 새기라는 것은, 문자적으로만 읽고 넘어가지말고, 깊이 묵상함으로 뜻을 알아들어 깨닫고 실천하여 그 진리를 심비에 새기라는 것입니다. 즉, 주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받게되는 성령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여 지키라는 것을 두번세번 재차 강조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서신(편지)에서 말합니다. 문자(의문)는 죽이되 영은 생명(영생)을 준다고 말입니다. 이는 돌에 새긴 문자(율법)가 아닌 심비(心碑; 마음판)에 새긴 성령(지혜와 은혜의 거룩한 영) 즉 마음그릇(영혼)에 채워지는 성령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주시는 분 즉 지혜이신 주 하나님을 '너는 네 누이라' 라고 명철을 네 친족 여인이라 하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남성으로 비유하지만 여기서는 여성으로 비유하였고 특히 그것도 혈연관계에 있는 여인으로까지 비유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남성들이 여기서는 성도들중 남성인 형제들이 가장 사모하는 것은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나 혹은 기혼자라면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남성이 돈을 버는것도 3~40평 이상의 좋은집으로 이사가서 삶의 터전의 기반을 안정적으로 꾸미기 위함도 있겠지만, 결국 지혜롭고 심성이 착하고 아름다운 처녀를 신부로 맞이하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이 경우에는, 연애시장에서 부자가되어 문란한 여성편력을 쌓기 위한 변수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즉 기독교 외경(천주교에서 정경으로 인정하는 경전)인 솔로몬왕의 지혜서를 읽어보면, 솔로몬은 그 존귀한 지혜를 아내로 찾아다녀서 지혜로 인해 모든 좋은 소산물을 누리고 즐겼으며 영생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결국 거짓선지자의 이단교리로부터 성도여러분을 보호해 준다고 오늘 잠언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짓선지자는 영적으로 음녀이며 타국여인및 이방여인이며 낯선여인(Strange woman)이며 낯선 자(Stranger)입니다. 즉, 잠언이 음녀이든 낯선여자든 감춰진 지식의 상징적인 단어를 써서 창녀의 유혹에 비유되는 거짓선지자의 미혹의 이단교리로부터 영혼구원을 받으라고 교훈합니다.

 

이제 오늘 설교내용은 대략적으로 요약하고 끝맺고자 합니다. 일단, 잠언 말씀 앞부분인 1장부터 9장까지 강조하는 큰 흐름은 결국 생명(영생)을 얻으려거든 계명들을 지키라(선하게 살아라), 라고 요약할 수 있으며(마19:17), 특히 1장 7절과 9장 10-11절에서, 주님을 두려워하는(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고 지혜의 시작이며 이것이 영생을 얻는 길이라고 말씀합니다. 욥기 28장에서도,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요 악에서 떠나는 것이 명철이니라.(욥28:28) 이라고 한 것과, 특히 또 시편에서는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고 그렇게하여 계명들을 지키는 자들은 좋은 명철이 있어 주님찬양이 영원토록 지속된다고 시편 111장 10절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 종교나 신비주의 철학 등등에서는, 종교적 계율과 금욕주의와 고행 등으로 몸을 괴롭게하여 진리에 접근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그러나 사도바울은 이러한 초등학문(철학)의 지식은, 자기를 낮추고(거짓겸손도 교만이긴 합니다.) 몸을 괴롭게하고 경시하는데는 지혜롭게 보이나, 육체(와 영혼)를 만족시키는데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골로새서 2장 말미에서 말씀합니다.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숭배로 인하여 조물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상을 놓치지말고, 오히려 모든 좋은 모든 완전한 지혜의 근원(머리,뿌리)이신 조물주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들어잡아 믿음으로 절대영원불멸의 천국을 차지하는 저와 성도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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