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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폭력에 침묵하지마라. 책 '국가는 폭력이다'

가스펠 크리에이터 2024. 8. 3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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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자 철학사상가 톨스토이의 저서 '국가는 폭력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가 책 전체를 아우르며 의미를 말해주고 있다.

 

즉, 국가는 폭력 그 자체라는 의미인데, 여기서 국가는 정부를 의미한다.

 

주로 의미하는 건 그렇고, 포괄적으로 공권력(경찰계 사법계 등등..)도 

 

포함될 수 있다. 그런데, 오래전의 도서라서 무조건 국가권력이 나쁘다고

 

말하기에는 신중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부도덕한 자들이

 

권력을 쥐느냐 아니면, 양심적이고 도덕적이며 국민을 위하여 지혜롭게

 

일할 자들이 권력을 가지느냐에 따라 공정한 법집행과 민생복지가

 

좋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국가권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는 하였고, 하여간

 

정치집단과 종교집단은 도덕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성향은

 

거의 분명해보인다. 정치판이 얼마나 아수라판 아수라장인지

 

방송에서 뉴스에서 국회방송에서 동물의 왕국을 보여주고있고

 

뿐만 아니라, 교회에 모인 청년부 형제자매들이 사실은

 

교회다니는 목적이?? 다들알잖아. 애인만들어서 섹스하려고

 

모이는 경우가 많다. 문란한 섹스를 목적으로 스와핑으로

 

성(性)적인 공유를 하는 청년부도 있다고 하므로, 그야말로

 

믿지도 않는 하나님 부르고 예수 그리스도 믿는척 그야말로

 

이렇게 가증스러운 대한민국 청년부교회들을 주님께서

 

보시면 얼마나 분노하시겠나? 그야말로 노아홍수처럼

 

다 쓸어버리지않을까? 물론, 주님믿지않고 믿는척하는 가짜형제들은

 

이 말 듣고 비웃을게 뻔하다. "신이 어딨어? 차라리 내 주먹을 믿어라."

 

라고 조롱할게 뻔하다. 내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유들이 이것이다.

 

하여간, 기독교와 기독교복음과 기독교윤리는 붙들어야 하지만

 

실제로 오늘 소개하는 책 저자 톨스토이 역시 기독교 신자로서

 

기독교윤리의 가치를 책에서 말하지만은, 교회집단에 대해서는

 

간디처럼 좋게만은 보지 않는 듯 하다. 그래서 나도

 

조물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만, 남녀청년신도들이 도덕적으로

 

순결하지도 선하지도 않고, 경건한 신앙심도 없어서 교회를 멀리하고있다.

 

(톨스토이처럼, 나도 조물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만 교회는 안다닌다.)

 

톨스토이는 정치와 종교(예배당모임)의 무쓸모(불필요)를 주장하면서,

 

국가(정부)를 폭력으로 규정하였는데, 어느정도 공감하는 내용도 있다.

 

그래서, 좋은 법과 제도가 있어도 선한 사람이 다스려야 평화를

 

가져올 수있다. 결론적으로, 책 내용을 전부는 아니어도 일부는 공감한다.

 

아래에 책 내용 일부 공개하면서 내 개인 리뷰를 마치도록 하겠다.

 

 

80쪽

 

사람들이 자신이 어떤 국가나 조국의 아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따라서 누구의 노예나 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때 정부라고 불리는 터무니없고, 불필요하고, 치명적인 구시대의 기구와, 여기서 비롯된 고난, 폭력, 굴욕, 범죄는 모두 사라질 것이다.

 

 

134쪽

 

우리가 우리의 편의와 안락을 위해 형제와 동포의 삶을 희생시켜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사람의 생명을 해치지않고 기술적 진보를 활용하는 일이, 형제와 동포들을 더이상 노예상태에 붙잡아두는 일 없이 자연을 관리하는 온갖 방법을 통해 삶을 풍요로운 혜택으로 가득 채우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139쪽

 

따라서 노동자들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노예제가, 다수를 소수의 지배아래 묶어둔는 노예제가 현재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한다. 은유적이거나 형이상학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실제적이고 명백한 의미에서 말이다. 두번째, 이런 사실을 인정한뒤 일부의 사람이 다수의 사람을 노예화하는 원인을 찾아야한다. 세번째, 이런원인을 찾았다면 그것을 없애야한다.

 

 

146쪽

 

따라서 세금이 일반적인 동의에따라 마련되었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쓰이기때문에 당연히 모두가 세금을 내야한다는 설명은 개인의 토지재산이 농업을 촉진하기위해 생겨났다는 설명만큼이나 옳지못하다.

 

 

156-157쪽

 

이른바 잘 다스려지는 국가에서 우리가 보고있는 국민들의 행복은 단지 겉모습이며 허상일 뿐이다. 국민적 행복의 겉모습에 방해가 되는 모든것, 예컨데 굶주린 자들, 아픈 자들, 반항하는 자들은 보이지않는 곳에 감추어져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더 깊이 감출수록 그들은 더 많아질 것이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자들은 그들을 더욱더 가혹하게 다룰것이다. 정부의 조직화된 폭력행위를 방해하거나 가로막는다면, 행복의 외관이 허물어지게 되겠지만, 그것은 무질서를 낳는 행동이 아니며 감추어졌던 진실을 드러내어 바로잡을 수 있게하는 올바른 행동이 될 것이다.

 

 

163쪽

 

따라서 노예제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그런 방법이 존재한다면, 새로운 폭력을 모색하는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정부의 폭력을 없애는 노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소수가 다수에게 행하는 다른 모든 폭력의 경우처럼, 정부의 폭력은 다수가 무장하지 않은 반면 소수는 무장해 있다거나, 이 소수의 무장이 다수의 무장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에 의존하고 있다.

 

모든 정복 전쟁에서 이런 양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인, 로마인, 템플기사단, 잉카제국을 침략한 피사로 형제는 이런식으로 국가와 민족을 정복했으며, 현재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도 이런일이 벌어지고 있다. 평화시에도 이런식으로 모든 정부가 국민들을 억압한다.

 

 

169쪽

 

정부라고 불리는 자격없는 소수의 사람들이 국민을 지배하며 국민을 나락에 빠뜨리는 수단은 바로 이런 기만이다. 세대 전체를 어린시절부터 왜곡된 길로 나아가게 만드는 행위는 정부의 가장 큰 해악이라고 하겠다. 정부와, 거기서 비롯된 노예제를 없애기 위해서는 이런 끔찍한 기만의 실체를 세상에 널리 알려야한다.

 

 

181-182쪽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사회의 악폐에서 해방시키는 방법은 한가지며, 그것은 고통의 원인인 폭력을 근절하고, 폭력을 가르치거나 폭력을 정당화하는 어떤 일도 금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을 병에서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오늘날 각 개인의 도덕성 각성과 일치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 방법을 받아들여야 한다. 살해위협 또는 실제의 살해로 폭력을 통한 재산과 생명의 보호가 가능한 것임을 안다면, 사람들은 마음편히 살해행위 똔는 살해위협으로 얻은 것을 이용하지 못할것이며 더욱이 살해행위나 살해위협에 가담하지는 못할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을 불행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모든 개인의 도덕적 각성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도 폭력을 근절해야한다. 그러므로 각 개인에게도, 일반적인 선을 위해서나 삶의 규범을 온전히 따르기 위해서나 폭력에 참여하지 말고 폭력을 정당화하지 말며 폭력을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의혹의 여지가 없다.

 

 

190쪽

 

만인에게 가장 유익한 조직은 모든사람의 목적이 이득이나 물질적 안락이 아니라 세속적 행복과는 상관없는 영적 안녕일때 모습을 드러낸다. 그때가 되면, 모든사람들은 진심에서 우러나와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슬피 우는 자에게, 박해받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라고 말할 것이다. 만인이 물질적인 행복이 아닌 영적인 행복 - 희생이 따르고 희생에 의해 입증되는 - 을 추구할때만, 그럴때만, 만인의 최대행복이 가능하다.

 

 

191쪽

 

정말로 모든 사람들이 자기자신을 위해 사는 세계에서 적당히 다른사람을 위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전히 자기자신을 버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 깨달은 양심의 목소리다.

 

 

194쪽

 

복음서의 가르침의 목표가 물질적 행복의 달성에 국한된다면, 오히려 물질적 행복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198-199쪽

 

한가지 방법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계시하고, 부(富)가 축복이 아니며 오히려 진정한 행복을 눈앞에서 감추고 시선을 빼앗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한가지 방법이 있을뿐이다. 그것은 속세의 욕망의 구멍을 막는 것이다. 그래야만 집안 골고루 열을 보낼 수 있다. 이 방법은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 - 생산의 증가, 따라서 일반적인 부의 증가를 위해 노력하는 것 - 과는 정확히 반대된다.

 

 

215쪽

 

이 정신적 무기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던 것으로 이 무기를 사용한 사람들은 권력을 무너뜨린 뒤 언제나 완전한 자유를 성취할 수 있었다. 이 무기란 다름아니라 독실한 종교적 정신이다. 믿음이 독실한 사람들은 세속적 삶을 완전한 삶의 편린으로 여기고, 자신의 삶을 무한한 삶과 연관지어 생각한다. 그들은 가장 큰 행복이 인간의 법을 따르는데 있는게 아니라 하느님의 법을 따르는데 있음을 깨닫는다.

 

 

220쪽

 

따라서 오늘날 우리 기독교 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 마땅한 합리적 행위는 단 한가지라 하겠다.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알려진 최상의 종교적 가르침, 즉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말과 행동으로 믿고 따르는 것이 그것이다. 나는 기존하는 삶의 질서하에서 사람들에게 관례적인 의식을 요구하거나, 속죄를 통한 구원에 대한 믿음과 설교에 만족하는 그런 기독교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나는 진정한 기독교 정신을 얘기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자면, 정부의 행위에 참여하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정부의 요구에 복종하지 말아야한다. 왜냐하면 그 같은 요구 - 세무서나 세관, 법원, 군대의 요구 - 는 모두 진정한 그리스도의 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사람들이 이웃에게 도움을 주기위해 취해야 할 행동은 새로운 형태의 체제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자기자신과 타인의 품성을 바꾸고 개선하는 것이어 되어야 할 것이다.

 

 

223쪽

 

종교적 활동만이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를 깨닫게하고 인간이 마땅히 해야할일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따져보면, 종교적 활동만이 우리에게 풍요로운 결실을 가져다줄 수 있다. 종교적 활동을 통해 지고한 목표뿐만이 아니라 사회개혁가들이 인위적으로 얻어내려는 그런 결과들을 더없이 자연스럽고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돕는방법은 한가지밖에 없다. 스스로 좋은 삶을 사는것이다. 이런방법은, 여기서 이익을 얻을 수 없는 사람들이 생각하듯 결코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닐뿐 아니라 사실 유일하게 현실적인 방법이다. 다른 모든수단은 환상이다. 대중의 지도자들은 헛된 환상을 심어주어 대중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진정으로 올바른 길을 외면하게 만들고있다.

 

 

224-225쪽

 

인류의 이상, 즉 폭력없이 잘 조직되어있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온정을 베풀고자 하는 대중의 지도자들이 먼저 깨달아야 할 한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품고있는 이상의 실현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 바로 지금 그들이 일삼고있는 여러 행위들이라는 사실이다. 구태의연한 미신을 고집하고, 모든종교를 부정하고, 사람들에게 정부나 혁명, 사회주의 세력을 도우라고 이끄는 행위들이 그것이다. 이웃을 진정으로 돕고싶어하는 사람들이,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국가의 지지자들이나 혁명가들이 제안한 수단들이 모두가 무용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사람들을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단 하나의 길이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이교도적인 삶을 버리고 보편적인 기독교도의 삶을 살고 지금과 달리 더이상 이웃에 대한 폭력행위의 가능성과 정당성을 인정하지않고 사사로운 목적으로라도 폭력행위에 참여하지 않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그리하여 생활속에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는 근본적인 도덕률을 따른다면, 우리가 현재 살고있는 비이성적이고 몰인정한 삶의 형태는 금세 타파되고 인간의 새로운 의식에 조응하여 앞으로 새로운 삶의 형태가 전개되어 나갈것이다.

 

 

232쪽

 

다가오는 혁명의 근본적인 원인은 과거와 미래의 모든 혁명들처럼 종교적인 것이다. 종교는 보통 보이지않는 세계에 대한 신비주의적 사상이나, 의식儀式, 인간의 삶을 지탱시켜주고 영혼을 위로하고 고무하는 숭배행위, 우주의 기원에 관한 설명, 혹은 신의 뜻에 의해 용인된는 인생의 도덕률 등으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종교라면 무엇보다 언제 어느 때라도 사람들에게 가장 큰 행복을 줄 수 있는 만인 공통의 규범을 알려줄 수 있어야한다.

 

그리스도의 가르침 이전에도 다양한 여러나라에서 전 인류에 공통적인 지고의 종교적 규범이 알려져있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인간이 행복해지려면 각자가 자기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의 복리를 위해 서로 협력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붓다, 이사야, 공자, 노자, 스토아학파). 이런 규범이 세상에 선언되고 나서 이를 알게된 사람들은 이 규범의 진실성과 유익함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251-252쪽

 

나는 사람들이 겪는 커다란 고통들은 모두 국가억압의 정당성을 인정함으로써 생겼다는 사실을 수없이 되풀이해 설명해왔다. 소수의 손에 엄청난 부가 집중되고, 다수는 수렁처럼 깊은 빈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땅을 일구지 않는 자들이 땅을 소유하고, 군비경쟁과 전쟁이 끊이지않고, 사람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은 모두 이 때문이다. 나는 정부가 없으면 사람들의 상황이 좋아질지 나빠질지 생각해보기전에 누가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들은 보통사람들보다 좋은사람들인가 아니면 나쁜사람들인가? 그들이 보통사람들보다 좋은사람들이라면 정부는 자비로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나쁜사람들이라면, 정부는 국민에게 해를 끼칠 것이다. 사실 그들 - 이반4세, 헨리8세, 마라, 나폴레옹, 아락체예프, 메테르니히, 탈레랑, 니콜라이 등 - 이 일반사람들보다 나쁜사람들이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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