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지혜

전생/윤회/환생 교리는 사기라고 관련 이방종교의 허구와 모순이 말해준다.

가스펠 크리에이터 2024. 8. 1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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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왜 전생 윤회 환생 즉, 태어나고 죽고하는 생로병사 수레바퀴의 윤회가 말도 안되는지 김태한 목사님께서 저술하신 뉴에이지(불교 신지학 등등 기독교포함 여러 종교들의 교리중 입맛에 맞는 교리들만 골라 믹스해서 섞은 그야말로 잡탕종교사상운동 속칭 뉴에이지 무브먼트..)를 비판한 저서 '뉴에이지 신비주의'에 보면 힌두교와 불교의 윤회설은 말도안되는 모순적이고 허구임을 알 수 있다. 일반인들도 본능적 직관을 이용하여 이미 윤회가 어딨냐며 수다스럽게 떠드는 것도 그 증거중 하나이다. 다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은 있다고 본다. 그리고, 한번 죽는것은 있을 수 있어도(과거의 여러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기타 순교성도들 등등...및 과거세대 인류), 불교나 힌두교에서 말하는 여러번 윤회를 언급한 생로병사 수레바퀴식 윤회는 없는것이다. 그리고, 조물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다.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자는 결코 죽지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즉 조물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고 올바르게 믿고 순종하는 성도들은 결코 죽지않고 이제와 절대영원무궁토록 살아서 절대불멸불노불사의 영원무궁생명과 영혼의 안식과 기쁨과 즐거움과 사랑과 온유함과 힘찬 활력 그리고 내세에는 절대영원천국낙원을 상속유업으로 받는 보상이 있다. 아래는 김목사님의 저서에 기록된 책내용중 전생/윤회/환생의 사기(詐欺)에 대해 비판한 내용위주로 추려서 적어본다.

 

 

 

신지학회의 진화론적 윤회설

 

헬레나 블라바츠키를 사로잡은 인도사상은 '윤회'와 '환생'이었다. 윤회란 죽은사람이 인간이나 동물의 형태로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고, 환생이란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인간은 이전에도 살아았고 이후에도 살 것이라는 사상이다. 이것들은 인간이 영속(永續)하기를 바라는 욕망에 대한 탈성경적 대안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나는 누구였나'로 바뀐것이다. 블라바츠키는 윤회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했다.

 

"윤회설은 세계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는 모든 자아의 영구적인 진보에 대한 믿음이며, 신성한 영혼이 외적인 세계로부터 내적인 세계로, 물질적인 세계로부터 영적인 세계로 옮아가면서 거듭 태어나 궁극적으로는 신의 원리와 합일을 이룬다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생이 시작될 때마다 영광과 인식, 능력도 배가되며, 이것이 바로 모든 자아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또한 슈타이너는 환생에 대해 "인간이 지상의 삶을 반복하며서 환생을 거듭하듯이, 우리의 지구 또한 오늘날의 이런상태에 이르기까지 여러 다른 상태들을 거쳐왔다. 인간이 이전의 다른생애를 갖고있었듯이 지구역시 이전의 다른모습을 갖고있다. 큰세계든 작은세계든 그안의 모든것은 환생의 법칙을 따른다."고 말했다.

 

재미있는것은 신지학회가 윤회라는 개념을 힌두교와 불교에서 가르치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재해석하여 자신들의 이론에 도입했다는 것이다. 신지학회는 계속되는 윤회가 영혼의 진화를 완성시켜주는 것이라고만 믿었다. 자신이 상대하는 미국인들이 윤회로인해 짐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에 그것을 무시해버린 것이다.

 

블라바츠키의 이러한 '진화론적 윤회설'은 프랑스 강신술학회의 설립자인 앨런 카르딕의 영향을 받은것이다. 윤회와 환생의 핵심은 인간은 계속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최후의 심판은 없으며, 인간을 심판하는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지학회에서 말하는 윤회의 결론은 이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라고 말한다.

 

전생의 삶이 다음 삶의 결과라는 윤회사상은 운명론으로 연결된다. 고통과 가난의 이유가 전생의 업 때문이라면 그것을 벗어날 방법도없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위해 애쓸 필요도없다. 윤회사상에 따르면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해 줄 필요가 없다. 업에 의한 인과응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렇게 말도안되는 논리를 지혜라며, 전통철학이라며 섬기면서 살아간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머무른 지점은 허무한 것에 굴복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법은 오직 성경 진리를 따르는 것뿐임을 또 다시 확인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라즈니쉬도 자신이 환생한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는 당시 자기가 하고있는일이 7세기 전에 자신이 시작한 일을 마무리 짓고있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은 전생에 많은 수의 제자를 거느린 106세의 '보디샤트파'로서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하여 영원히 육신을 벗어날 순간에 있었는데, 따르는 사람들이 미래에 환생하는 것을 돕기위해 깨달음을 얻기 3일전에 자살했다는 말도안되는 말을 했다.

 

기독교 내부에서 '뉴에이지운동'을 비판하는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뉴에이지는 그렇게 위험하거나 죄악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뉴에이지사상의 정체를 제대로 모르는데서 기인한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같이 기독교 최대 베스트셀러인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이 뉴에이지운동의 일종인 신사상운동의 세계관을 담고있다. 뉴에이지는 교회와 성도의 바로 코앞에 있는것이다. 기독교의 뉴에이지 세계관에 대한 비판은 정당한 것이며 시급한 것이다. 

 

성경은 분명 여러곳에서 성경의 인도없이 영적인것을 추구하는 행위에 대해 경고하고있다.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를 받은 존재들이기 때문에 신지식(神知識)을 가지고있다. 그러나 신지식을 갖고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잘 다룰수 있다'는 것을 보장해 주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상숭배자도 있는것이고 뉴에이져(new ager)도 존재하는 것이다.

 

뉴에이지운동은 명상, 참선(參禪), 요가, 정신요법 등을 통해 인간의식의 확장과 혁명을 이룰 수있고, 이를 통해 인간이 신(神)이 될 수 있으며(이미 신이고??) 이러한 능력으로 인간에게 닥치는 고통과 난제들을 전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이 무언가를 시도해서 안되는일은 없다는 것이다. 기(氣),  프라나, 쿤달리니는 뉴에이져들에게 단순한 힘이 아니라, 신격화된 에너지이다.

 

 

ufo종교들과 그레이엄 핸콕

 

ufo와 관련된 종교들이 적지않은데,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사이언톨로지'와 '라엘리안 무브먼트'(raelism)이다. '사이언톨로지'는 영국의 sf소설가인 라파에트 론 허바드가 만든 종교이다. 이 단체의 주장은 그야말로 sf소설같은 것으로 핵심적인 주장은 '인간이 신'이라는 것이다.

 

사이언톨로지는 모든 인간은 원래 '테탄'(Thetans)이라는 신이라고 주장한다. 우주를 창조한 테탄은 그들이 만든 피조물로 화신했으며, 그때 자신이 신이라는 정체성을 잊어버렸다고 한다. 그러므로 다시 인간의 진정한 정체(인간은 신이다??)를 깨닫게 해주기위한 심리요법적 과정을 제시한다.

 

'라엘리안 무브먼트'는 인간은 외계인 창조자 '엘로힘'이 25,000년 전에 DNA합성을 통해 창조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종교이다. 교주인 클로드 보리롱 라엘은 전직 자동차 잡지 저널리스트였다. 그는 자신이 1973년 12월 13일에 프랑스의 클레몽-페랑 근처 화산에서 ufo를 보았고, '엘로힘'이라는 외계인이 자신에게 인류의 기원을 알려주는 메세지를 맡긴다고 하였으며, 그를 '라엘'('메신저'라는 의미)이라 부르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 외계인은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을 창조한 바로 그들이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라엘은 예수, 붓다, 모세, 마호메트, 조셉 스미스 등은 모두가 인류의 진보를위해 외계인 엘로힘이 보낸 외계인들이었으며, 라엘 자신은 엘로힘에 의해 선택된 마지막 예언자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엘로힘이 "인간이 전통적인 유대-기독교 도덕의 제한에서 자유롭게 되어서 아름답고 섹시한 육감적 삶을 바라고있다."고 주장하는데(이들은 '동성연애'와 '프리섹스'를 지지한다), 이 집단이 추종자를 모을 수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라엘리안 무브먼트는 모임에서 '섹스 의식'을 행하기도 한다(그들의 말로는 '우주적 오르가즘'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이비종교의 공통적 특징 중 하나인 성(性)에 대한 탐닉은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중요한 가르침이다.

 

이러한 ufo숭배단체와 뉴에이지운동은 공통점을 갖고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들의 주장에의해 이 세상에 새로운시대가 열린다'는 주장이다. 이런것을 '천년왕국 운동'이라고 한다. 외계인이 지구로 찾아오는 것은 지구를 혼란으로부터 구원하는 메시아적 가치를 지니는 것이고, 메시아가 온다는 것은 이전 시대는 사라지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라엘리안 무브먼트는 엘로힘이 지구인과 만날 수 있는 대사관을 건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뉴에이지운동도 마찬가지다. 잘 알려진 바와같이 '뉴에이지'라는 말은 점성술에서 나온 용어이다. 점성술에 나오는 춘분점 세차운동은 12궁에 따라 움직이며, 각 궁에서 태양은 약 2,100년을 머무는데 지금시대는 '물고기자리'(그들이 말하는 '기독교의 시대.' 쌍어궁)를 지나 '물병자리(보병궁, aquarius)로 진입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뉴에이지 추종자들은 '물병자리'시대를, 새로운 영이 도래하여 새로운 의식으로 인류의 정신이 집단 계몽되는 시기로 본다. 

 

[신의지문], [창세의 수호신], [우주의 지문] 등의 책으로 유명한 초고대문명 관련 저술가인 그레이엄 핸콕도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주장하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 그가 쓴 책들은 결국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기 위한 것으로, 그것은 바로 고대 마야의 달력이 2012년 12월 12일에서 끝나기 때문에 그때쯤에 세상에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근거없는 주장이다.

 

피라미드와 같은 건축물은 지금으로부터 15,000년전쯤에 존재했던 고등한 문명을 이룬 사람들에 의해 건축된 것으로, 당시 하늘에서 온 존재들(마야인들은 멸망에 대해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 알려준 것이라고 기록해 놓았다)이 피라미드에 암호로 지구에 재앙이 언제 닥칠지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핸콕은 그 시기를 고대 마야의 달력에서 발견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뉴에이지사상과 긴밀하게 연관된 허황된 이론이다.

 

 

제4장, 사탄이즘과 헤로메티카

 

우주적 인본주의

 

인간은 종교적인 존재이다. 인간은 어떤 것이든 섬기고야 만다. 그대상이 초월적인 존재일수도 있고, 짐승일수도 있고, 사람일수도 있고, 어떤 법칙일수도 있고, 자기자신(meism)일수도 있다. 잘 알려진대로 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언했다. 그러나 니체는 그와동시에 초인이라는 신적존재에 푹 빠져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결국 그 신을 죽인것이 아니라 신을 '대체'한 것이다. 인간의 본능인 초월적인 것에 대한 목마름이 그에게는 초인사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신을 저주하는 사람도,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자도 결국 신을 발견하고야 만다.

 

신 자체와 초월적인 모든것에 적대적인 인본주의도 매우 '종교적'이다. 인본주의는 성경진리를 반대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아무것이나 믿어버리고만 '종교적' 세계관이다. 이들은 자기들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에 철저히 복종하면서 살아간다(광신狂信은 종교세계에만 있는것이 아니다. 인본주의자들은 인본주의를 '광신'한다).

 

인본주의의 기초는 '자연주의'이다. 자연주의란 자연의 존재하는 모든 것의 전부라는 신념이다(유물론). 초월적 존재는 존재하지 않으며 이 세상을 오직 자연의 내재적 힘에 의해서만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버트 저메키스의 영화 <콘택트>의 원작자인 천문학 교수 칼 세이건은 자신의 베스트셀러 [코스모스]에서 "우주만이 존재하고 존재했고 존재할 모든 것이라"라고 쓰고있다. 도올 김용옥이 독창적인 이론이라며 자랑하는 그의 기철학(氣哲學)은 자연주의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중략...)

 

자연주의의 과학적 버전이 바로 '진화론'이다. 이 세상이 갖고있는 힘만으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것이 생겨났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이세상 자체에 대한 대단한 창조능력이 있어야한다(그러므로 진화론은 범신론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것이 신이니, 자연도 신인것이고, 신인 자연은 무한한 창조능력을 갖고있다는 것이다).

 

'진화'는 바로 이 '창조능력'에 대한 증거로 제시하기위해 주장된 것이다. 모든 존재가 '우연히' 그리고 '저절로' 생겨났다는 것이다. 자연은 많은 시간만 주어진다면 그런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창조주라는 개념을 끌어들이지않아도 온 우주를 전부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생명의 기원에 대한 문제로부터 시작해서 모든것을 진화론의 입장에서 설명하려는 것이 '과학적 자연주의'라는 인본주의 신앙이다.

 

인본주의의 또 다른 버전이 바로 '뉴에이지운동'이다. 진화론이 창조주를 제거한 후 '물질적'인 것으로 우주론을 정립하려고 했다면, 뉴에이지운동은 하나님을 제거한후 '영적'인 것으로 우주론을 세우려고 하는 신앙이다. 진화론은 영적(기독교 교리)인 것을 배제하는 것이 인간의 해방이라고 본 것이고, 뉴에이지는 모든것을 영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해방이라고 본 것이다.(중략...)

 

신비주의자들은 인간 내면에 있는 '잠재력'이라는 빛과 능력으로 인간을 높이는 것이고, 합리주의자들은 두뇌안에 있는 '이성(理性)'이라는 빛과 능력으로 인간을 높이는 것이다. 사람이 곧 궁극적인 진리라는 인본주의가 이 두가지 세계관을 받치고 있는 기둥인 것이다.

 

합리주의와 신비주의는 둘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는 '우주적 인본주의'의 이름만다른 동일한 버전이다. 합리주의는 합리적인 척 하지만 결국 또 다른 신비주의에 불과하다.  창세기 3:1-7에 보면 인류의 타락에 대한 내용이나온다. 그런데 이 본문을 잘 보면 인간이 타락한 원인이 지혜와 지식에 대한 추구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시말해서 인간이 하나님을 증오해서 반역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뱀은 "너희가 그것을 먹는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5절) 라고 말했다. 바로 뒤의 6절은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라고 되어있다.

 

하와는 "지혜롭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선악과를 먹은것이다. 이처럼 원죄의 출발은 지식욕(하나님과 같은 혜안을 소유한 존재가 되고싶은 욕망)에 따른 것이었다. 지혜와 지식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 지혜로워지고 싶어했던 미련한 생각이 바로 타락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5절을 보면 알 수 있듯 사단이 하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하나님이 인간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는데 하나님이 그 길을 막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인간이 진보하고 진화할 수 있는데 기독교가 그것을 방해한다는 주장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야만 자기 실현을 할 수 있으니 하나님을 박차고 나오라고 하와를 꾀고 있는 것이다. 이 태초의 사단의 거짓말이 바로 뉴에이지운동의 핵심이다. 인본주의가 결국 무엇인가? 합리주의와 신비주의가 결국 무엇인가? 하나님 없이 지혜와 지식을 추구하는 자들이 만들어낸 악습이며, 허황된 이야기일 뿐이다.

 

진리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배제한 지혜와 지식은 인간을 불구로 만들었지만 인간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자신이 불구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인본주의의 그 엉성한 지식을 자랑하며, 지식의 양으로 지혜에 대한 무지를 방어하면서 살아간다.

 

인본주의자들의 지식은 겉보기에는 휘황찬란하다. 내용도 방대하고 수사(修辭)도 멋지고, 사용하는 용어들도 어려워서 뭔가 대단한 주장을 하는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식들을 걷어내고 내부로 들어가보면 우스운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하나님을 배제하고 사람을 진리의 기준으로 삼은 지식이 온전한 것일리가 없다.

 

하나님없이 지혜와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사단에게 속는 것이다. 사단의 거짓말에 넘어간 인간은 지혜로운 존재가 되기는 커녕 선(善)에 무지하고 선을 행할 능력은 퇴보된 반면, 오직 악을 알고 악을 행하는 능력만 커져버렸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이처럼 위험한 일이다. 성경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없으면 사람이 위험해지고 바보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명령(계명)은 그 명령에 불순종할때 닥쳐 올 위험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만들어진 지식들이 얼마나 난센스들을 많이 만들어 냈는가를 생각해보자.

 

김용옥은 "무신론(無神論)은 모든 진정한 합리성의 기초이며 근대적 삶의 기본요건이다. 무신론 그 자체가 하나의 심오한 신론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 망각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것을 큰 자랑거리로 삼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창세기 3장을 보면서 기억해야 할 또 한가지는 '완전하게' 창조된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꼬임에 넘어갔다는 사실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말처럼 사단은 '최초의' '완전한' 인간을 정복했다. 완전하게 창조된 인간조차 꼬임에 빠졌다면 그 어떤 인간도 정복당할 수 있다. 이 말은 사실이 되었다. 태초에 있었던 사단의 거짓말은 우리 시대의 정신을 형성하고 있다. 최초의 인간이 사단의 말에 속은것과 같이, 지금 우리시대의 사람들도 사단의 거짓말에 놀아나고있다. 이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인간은 처음 타락했을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 조상이 속아넘어갔던 그대로 지금 인간들도 속고있다.

 

모든 인간안에 있는 빛과 능력이 있다고 믿으며, 인간을 만물의 중심에 놓는 사람들을 '신광(神光)그룹'(divine light group)이라고 한다. 이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초월적 신에 대해 신경쓰지않고, 인간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신성을 강조한다. 헤르만 헤세, 칼 구스타프 융, 영지주의 등이 여기에 속한다.(중략...)

 

뉴에이지운동은 신광그룹의 생각과 동일하다. 인간의 잠재적 능력을 신뢰하라는 것이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임을 강조한다. 사람들은 이제 신을 부인하는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바로 신이라고 선포한다. 무신론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버린 인간들은 이렇게 스스로 지옥을 만들면서 살아간다. 지옥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후에 가게 되는 곳이 아니다. 지옥은 인본주의자들이 늘 선택하는 바로 그것이다.

 

 

사탄이즘과 오컬트 문화

 

'사탄이즘(satanism; 악마주의) 문화'나 '반(反)기독교 문화'와 같은 표현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기독교가 '무턱대고' 모든 문화를 기독교적인 것과 반기독교적인 것으로 양분한다고 짜증을낸다.(중략..) 기독교가 문화를 비판하는 이유는 병든 문화, 병든 정신상태가 분명히 존재함을 알리기 위한것이다. 사단은 분명히 존재하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이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며, 문화를 분석하는 세속의 지식인들에게 감추어진 면들일 뿐이다.

 

(...중략) '사탄이즘 문화'란 간단히 말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이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목표를 따라 살도록 창조함을 받았으나, 인류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 없는 문화가 생겨났고, 그것이 유지되고 있으며, 그 문화때문에 사람들은 더 많은 죄를 짓고있다. 타락한 인간, 타락한 문화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치를 멸시하고, 자신의 더러운 욕망을 충족시키는 삶을 택한다. 사탄이즘 문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방해를 의미한다.

 

병든문화, 병든사회는 분명히 존재한다. 사탄이즘 문화도 분명히 존재한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정상적인 문화와 비정상적인 문화를 구분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인간에게 혹은 문화에 '적합한' 정신건강 상태에 대한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의해서 각 사람과 문화의 건강상태가 판단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기준을 버리고 말았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더이상 진리추구에 관심을 갖는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것, 당장의 필요들, 심리적 만족감 등에 더 많은관심을 기울이고있기 때문이다. 그저 즐겁고, 유쾌하고, 자기취향에 맞는것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자기를 만족시킬 수 있는 즐거움을 찾아 헤맨다.

 

포스트모던 시대는 질서보다는 무질서가, 보편성보다는 상대성이, 규범성보다는 무규범성이 판치게되는 시대이다. 포스트모던 시대는 이것도 진리일 수 있고, 저것도 진리일 수 있다는 감상적인 겸손에빠져, 확실한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않는 시대이며, 진리와 가치의 객관적 실재를 부정하는 시대이다.

 

이런 어리석은 세계관에 인본주의자들은 지적(知的) 성격을 부여했고, 그로인해 뭔가 '있어보이는'(근사해보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었다. 인본주의자들은 기독교 가치관에 반발하려는 데서 출판한 이런 피상적 극단주의의 길을 가게되었고, 자기의 주인인 하나님을 폐위시키고 그 대가인 '허무'와 '무의미'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1960년대의 반(反)체제 문화운동에는 '오컬트(occult;밀교)'의 부활이 포함되어 있었다. 60년대 반문화운동은 모든종교를 반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독교'에 대해서만 반발한 것이다. 반문화 운동은 '세속화'가 아니라 '종교화'이다. 기독교 밖에 있는 영성들에 대한 관심이며 지지인 것이다.

 

오컬트의 사전적 정의는 근대과학의 도구들에 의해서 측정되거나 인식될수없는 자연 또는 우주안에 숨겨지고 감춰진 힘들을 끌어내는 의도적인 실천들, 기술들, 절차들을 말한다. 사전은 오컬트를 이처럼 매우 고상해 보이게 기술하고 있지만, 오컬트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 주술, 마법, 부적, 예언, 강신술, 점성술 같은 행위를 통틀어 일컫는 것이다.

 

기독교에 대한 거부는 오컬트의 부활과 부흥을 가져왔고, 오컬트는 정신적 공백을 메꾸어 줄 유사종교로 기능했다. 악마주의적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던 오컬트는 사람들의 초월적인 것에의 관심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역할을 했다. 1966년에 앤튼 샌더 레비(anton szander lavey)라는 사람이 '사탄교회'(the church of satan)를 세운다. 이는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어느시대에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적그리스도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 사탄이즘의 기초는 '반(反)기독교주의'와 '반(反)도덕주의'이다. 레비(안톤 라베이)는 자신이 사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기독교에 대한 강한 거부를 나타내기 위함이라 밝힌바있고, 사탄이즘은 자기자신의 필요, 욕망, 믿음 그리고 목적을 최고의 것으로 여기는 반도덕주의임도 밝힌바 있다.

 

특히 반기독교주의의 측면은 사탄이즘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어낸 큰 이유이다. 기독교를 진리로 인정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편협하고 무능력한 기독교'를 외치는 사탄이즘은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교주의는 기독교의 억압으로 잃어버린 최상의 지혜로 과장되기 시작했고, 계몽주의가 자신이 약속했던 유토피아를 가지고 오지 못한 것에 대한 반발로, 무규범과 무질서를 세계의 근원으로 인정하고 살아가는 문화가 생겨났다. 기독교 교리에 대해서는 앞뒤 가리지않고 악착같이 비판하면서도, 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주술적 사고(思考)들에 대해서는 무조건 인정해주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사탄이즘의 실체는 '세속 인본주의'이다. 사탄주의자들은 인류의 희망을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있다고 믿는 인간성에서 기대하며, 자신들 마음대로 삶을 꾸리기위해 기독교를 거부한다. 사탄이즘과 오컬티즘은 인간을 세상의 중심으로 보며 인간을 우주적 차원으로 부풀린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인간이 매우 고귀하게 되거나 신성하게 되거나 신과 같이 되는 것이 비록 사실에 있어 종종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성의 일부분"임을 강조한다. 이런 말장난이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다.

 

레비의 [사탄 성경]은 저질과 퇴폐로 일그러진삶(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치러야 할 대가)을 위한 쾌락주의적 격언의 모음집이면서, 일관성없는 오컬트의 잡탕이다. (중략..)  예를들어, ac/dc, coven, black sabbath, kiss, slayer, deicide, witchfynde, marilyn manson, led zippelin 등의 헤비메탈 벤드들은 잔인함, 폭력, 방종, 우울, 마약 남용과 같은 사탄주의적 가치에 몸을 맡겼다. 오컬트 영화는 사탄, 마술, 악령숭배, 초자연적 현상이 소재로 등장하는 영화이다. 대표적 영화이다. 대표적 영화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악마의 씨>(1968), 윌리엄 프리드킨의 <엑소시스트>(1973), 리처드 도너의 <오멘>(1976), 그리 테일러 핵포드 감독의 <데블스 에드버킷>(1997)을 들 수 있다.(중략...)

 

 

 

제5장, 붓다와 티베트 불교

 

티베트 불교와 신지학회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 덕분에 불교는 서양에서 큰 인기를 끌고있다. 자비의 종교로 알려진 불교는 세계대전의 피비린내 후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매혹시켰고, 불교의 절대성에 회의적인 달라이 라마의 말들은 싸움의 주된 이유를 '배타주의'로 보는 사람들의 찬사를 얻어냈다.

 

불교에 대한 관심과 찬사는 90년대에 시작된 현상이 아니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유럽에서는 지혜와 영성으로 가득찬 동양종교(이상화 된 불교)가 영적인 기근상태인 서양을 구원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사로잡혀 있었다.(특히 독일 낭만주의자들이 그랬다.)

 

서양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었던 것은 '신비의 나라'로 알려진 '티베트'였다. 티베트가 신비의 나라로 인식되게 된 원인은 티베트의 수도인 '라싸'가 외국인의 출입을 금지했다는 것(높은 히말라야의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티베트는 접근하기 쉬운곳이 아니었다.)과 블라바츠키의 신지학회가 티베트를 이상화시켜 과장된 관점으로 바라보게 만들었음에 기인한다.

 

헬레나 블라바츠키는 신지학회의 모든 책들은 태고의 본질적인 진리를 알고있는 스승으로부터 텔레파시로 알게 된 것을 받아적은 것이라고 했는데, 그 스승이 바로 티베트에 살고있다고 주장했다. 블라바츠키는 동시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신비와 비밀의 나라 티베트'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티베트의 신화화(神話化)에 큰영향을 끼친 책이 롭상 람파 라는 사람이 쓴 베스트셀러 [제3의 눈]이다. 이 책은 정신세계사가 [나는 티벳의 라마승이었다.] 라는 제목을 붙여 세권으로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티베트에 가본적도 없는 저자는 보기드문 마술을 행할 수 있는 티베트 라마승에 대해 쓰고있는데, 이 책을 통해 서양인들은 티베트를 신비화시켜 이해하게 되었다.

 

블라바츠키는 불교에 크게 심취했었던 사람이다. 블라바츠키의 동업자인 헨리 스틸 올콧은 블라바츠키보다 그 정도가 더 심했는데, 그는 실론섬으로 가서 붓다의 출생일을 섬 전체의 휴일로 제정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신지학회에서는 붓다를 어떤 존재로 생각할까? 신지학회에서는 윤회라는 것은 일곱가지 인류진화의 순서에 따라 여러 행성에서 일어나는데, 약 100만년전부터 인간은 제4세계의 5번째단계에 살고있는것이고, 붓다는 바로 이 5번째단계의 인물중에서 가장 깨달음이 큰 자라고 주장한다. 신지학회는 붓다가 현재의 인류에게 신지(神智)를 알려주기위해 왔다고 본다.

 

 

심리적 쾌락의 창시자 붓다

 

(중략..) 불교의 인기는 이런 가르침으로 인한 것이다. 기독교처럼 신을 내세우지 않고도 인간이 스스로 알아서 탁월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간이 인간자신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에 매료되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의 사회학 명예 연구실장인 에드가 모랭은 "신은 부재하며 계시가 없는 종교의 출현이 인류의 희망"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설득력 없는 주장들이다. 하와의 죄는 하나님 없이 인간이 지혜로워 질 수 있다는 생각 바로 그것이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절대 '제대로 아는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는 하와와 같은 존재일 뿐이다. 조직신학자 헤르만 바빙크는 말한다. "석가가 깨달음을 얻었음에 틀림없다고 할지라도 모든 개혁된 종교들도 다른 대중의 미신(迷信)과 본질에서 차이가 없고,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이다."

 

이 말은 아주 중요하다. 괜찮은 가르침이 있다고해서 그 종교를 기독교와 같은 수준으로 보아선 안된다. "광명의 천사"로 변장하는 사단이 선과 악을 교묘하게 결합하여 사람들을 속이기 때문이다. 사단이 악한것만 제시하면서 인간에게 다가올 것 같은가? 악은 악에 빠지게 하기위해 선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그래서 성경은 선행을 통해서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이 사실에 무지하면 다른 종교에도 참된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에 놀아나게 되는것이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인 박해경 목사는 "참 하나님을 만나고 섬기게 하는 것이 복음이고, 우상숭배와 미신에 빠지는 것이 종교이다. 종교들의 배후에는 사단이 있다. 이 점을 파악하지 못하면 종교다원주의로 빠져서 모든 종교는 다 같은줄로 착각하게 된다." 고 말한다.

 

(중략..) 어느 기독학생 모임 간사라는 사람이 종교다원주의를 지지하는 글을 썼다. 나는 그에게 "이웃종교에 포함되는 종교들은 어떤 것인가요? 그리고 만약 거기에 포함되지 않은 종교가 있다면 어떤 것이고 그 이유는 뭔가요? 라고 물었다. 그는 "탁월함과 위대성이 알려져있는 종교들", "인간을 구원하고 생명을 살리고 정의와 평화를 일궈내는 그러한 종교", "생명을 살리는 이웃종교들"이 바로 "이웃종교"에 포함된다고 했다.

 

나는 "그런 기준은 너무 막연하기 때문에 그런 추상적인 기준으로는 이웃종교에 포함하고 포함되지않고를 분명하게 가르는 것이 불가능"하며, "각 종교들이 바로 자기가 그런 기준에 합당하다고 말할 때에는 뭘 기준으로 갈라야 하느냐" 고 질문했다. 그는 예상대로 이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하지못했고 하나마나한 이야기만을 반복했다.(..중략..)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昏迷)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고후4:4)은 마찬가지다. 모두 인간의 진정한 필요에 무능하고 주장하는 근거가 거짓말에 불과함은 마찬가지다. 기독교만 진리라는 사실을 믿지않으면 이런 난센스에 빠지게된다. 진리는 오직 하나이다.

 

붓다는 이 세상에 존재했었던 여러 사람 가운데 한명에 불과하다. 그는 인간과 세상과 우주에대해 자기나름대로 추리하고 이해하고 인정한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다. 윤회, 전생, 해탈, 환생은 인도인들의 터무니없는 상상력의 소산이다. 그것은 붓다가 믿고싶었던 '심리적 사실'이지 '신학적 사실'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에 그런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붓다는 지적 유희의 정신적, 심리적 쾌락을 만들어낸 사람이다.

 

 

<쿤둔>과 툴쿠사상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한 <쿤둔>은 14대 달라이 라마인 텐진 갸초를 다루고있다. 달라이 라마 제도는 티베트 불교의 가장 큰 특징인 '툴쿠' 사상과 관련되어있다. 툴쿠란 티베트어로 '붓다의 화신'을 뜻한다. (..중략..)('쿤둔'은 '지혜를 가진 스승'이라는 뜻의 달라이 라마에 대한 별칭으로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자'라는 뜻이다).(...중략..) 그런데 그 사람의 환생인 6대 달라이 라마가 여자에 술에 빠져살다 쫓겨나자 다른 달라이 라마를 선출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6대에는 달라이 라마가 두 명이 되었다.

 

현재의 달라이 라마는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발언만을 골라서 하는 재능이 있다. 그의 인기비결은 바로 이것이다. 그는 모든것에 너그럽다. '관용' 그 자체이다. 그는 비폭력과 자비를 강조하며,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가 어떤 종교를 믿느냐 마느냐 하는것은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자유롭고 도량이 넓은 정신적 스승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그는 현대인이 좋아할 말을 하는 종교지도자인 것이다. 그와 동시에 '절대적 진리'를 외치는 기독교는 조롱당한다. 그의말을 들어보자.

 

"절대적 진리는 없다. 물론 불경에 보면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 이 따위 말들로 가득차있다. 그런데 이런말들을 사람들이 매우 잘못이해하고있다. 붓다의 깨달음이 연기(緣起)인 한에 있어서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우리가 '절대적 진리'라고 말할때 이미 우리는 그 말이 지닌 역사적 인식의 포로가 되어버린다. 마치 절대적 진리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그리고 이 우주에는 절대적인 그 무엇이 꼭 있어야만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어떤 공포감이나 중압감의 포로가 되어버린다. 이것이 기독교의 유일신론적 사유가 지어낸 서구적 발상의 일대오류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찰나일뿐인데, 이 잠깐동안의 삶에 있어도 뭐 그다지도 애타게 절대에 집착을 해야한단말인가? [대반열반경]에 나오는 붓다의 마지막 말이 무엇인가? "변하지않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한마디가 그의 전 생애를 마감하는 최후의 일성이었다."

 

(..중략..) 어떤 원리나 교리에 대해 애매한 말을 하지않고 분명히 말하면 너무 속좁은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만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달라이 라마가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분명한 선을 긋거나 절대적인 것을 선언하지 않는 달라이 라마는 참된 종교지도자이고, 절대적 진리를 전하는 그리스도인은 계몽이 덜된 시대착오적인 존재로 취급받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저 인간적인 매력에 불과한 것과 참된 종교지도자의 자격을 혼동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참된 진리를 모르는 자이다. 그가 이것저것 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진리가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고, 그런 사람에겐 아무것이나 다 괜찮다. 그는 '지혜를 가진 스승'이 아니다. 그는 붓다와 같이 인간과 세상과 우주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추리고 이해하고 인정한 한명의 사람일 뿐이다.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은 결코 깊지않다. 그의 가르침들은 대충 살면서도 탈속과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허영심을 채워주기에 적당한 말(언어)의 나열에 불과하다. (..중략..) 결국 불교는 뱀이 하와에게 제시했던 모든 신비주의의 핵심인 "너희가 신神처럼 되리라" 라는 주장의 추종에 불과하다.

 

1999년에 달라이 라마의 정체를 폭로하는 책이 발행되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달라이 라마의 충실한 추종자였던 빅터/빅토리아 트리몬디 부부가 쓴 [달라이 라마의 그림자; 성(섹슈얼리티), 마법, 그리고 티벳교도 불교안의 농락]이 그 책이다. 이 책은 달라이 라마가 자신이 선택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섹스의식(탄트리즘)을 벌이는 것을 목격하고 쓴 책이다.(..중략) 달라이 라마는 남녀간의 성교가 깨달음을 위한 것이라면 부도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인간이 '지혜를 가진 스승'이 되기 위해서는 진리이신 하나님과 밀착되어 있어야한다. 지식과 지혜는 영적인 문제이다. 지적인 회개가 없으면 불교처럼 인간을 판단의 유일한 기준으로 세우며 그 안에서 자족하게 된다.

 

 

제6장, 너희는 예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는 신화다?

 

(중략..) "견유(犬儒)란 문자 그대로 '개처럼 사는 지식인'이라는 뜻이다. 영어로 시닉(cynic)'이라고 부르는 것도 개를 뜻하는 희랍어 '퀴온'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들은 모든 전통과 문명을 거부했다. 기존의 종교와 도덕, 의복, 주거, 음식, 일상예절을 거부했던 것이다. 그들의 삶의 수단은 '걸식'이었고 끊임없는 무소유의 방랑이었다." (김용옥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

 

예수를 견유학파로 보는 전제는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사회적 혁명가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예수가 메시아임을 부인하는 예수 세미나는 이처럼 예수님의 지위를 낮추려고 애쓴다. 김용옥도 이들과 마찬가지 주장을 한다.

 

예수는 견유학파적 리얼리즘을 철저히 실천한 사람이었다. 예수는 그의 운동에 가담하는 제자들에게 돈을 담은 전대는 물론 지팡이나 가죽샌들도, 그리고 속옷조차도 지니지 못하게 했다(마 10:9-10, 눅9:3, 10:4). 지나치는 사람들과 문안인사조차 하지말라고 당부했다. 견유학파의 덕목은 최소한의 질박한 삶이었고, 모든 세속적 가치에 대한 절제였다. 역사적 예수를 가장 잘 조명한 신학자 크로상은 예수를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규정한다: "역사적 예수는 갈릴리의 견유(cynic)였다." (김용옥, 같은책)

 

김용옥은 "돈을 담은 전대는 물론 지팡이나 가죽샌들도 그리고 속옷조차 지니지 못하게 했다."와 "지나치는 사람들과 문안인사조차 하지말라고 당부했다"는 것이 예수님이 견유학파라는 증거라고 말하고있는데, 이는 신학과 역사학에 대한 무지에 의한 것이다. 왜냐하면 견유학파는 구걸하는 자루를 가졌고, 거리에서 대담한 말들을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머니를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말라"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다르다.

 

예수를 다룬 책들중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책이 국내에도 커다란 화제를 몰고왔던 [예수는 신화다(the Jesus mysteries)]이다. 이 책은 온라인상에서 기독교에 대한 증오심을 품고있는 '안티'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공격 이론을 제공한 바이블로 숭배되고 있기도하다. 자신을 "우주보(宇宙寶)"라 칭하는 도올 김용옥은 이 책에 대해..(..중략..)

 

김씨의 글을 보면 [예수는 신화다]의 저자들이 굉장히 실력있는 "학자"일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 책의 논증이 "설득력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책을 꼼꼼하게 읽어보면 저자들은 대단한 "학자"이기는커녕, 자신들이 원하는 예수를 말하기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학문적인 중립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주장을 하고있다. 이 분야에 무지한 사람들에게만 대단한 책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예수는 신화다]는 '영지주의'를 옹호하기위해 쓴 책에 불과하다. 정통기독교를 비판하고 영지주의라는 '이교주의'를 되살리기 위한 것이다. 역자 서문을 보자.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오늘날 이단으로 치부되는 그노시스파, 곧 영지주의자들의 그리스도교가 원래의 그리스도교이다!"

 

"저자는 이렇게 시사한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이교신앙은 오늘날의 그리스도교(문자주의)보다 영적, 도덕적으로 훨씬 더 뛰어난 신앙이었다!"

 

"이교신앙의 수준은 매우높았다."

 

저자는 영지주의가 '혼합주의'임을 자랑스럽게 밝히고있다. 이책이 이교주의(異敎主義) 예찬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지주의자들은 이교신앙을 적대시하지 않았고, 이교신앙에 빚을 지고있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인정했으며, 고대철학연구를 장려했다. 실제로 나그함마디의 동굴에서는 그리스도교에 관한 영지주의 문서뿐만 아니라 이교도의 문서도 함께 발견되었다."

 

영지주의가 이교도의 교리를 동원해서 예수의 원래 가르침을 혼란시킨 것임을 스스로 밝힌것이다. 영지주의의 기원은 기독교가 아니라 '이교주의'이다. 또한 이 책(예수는 신화다)은 영지주의의 현대판인 뉴에이지운동의 구호를 외치고있다.

 

"영지주의자들은 오직 하나님만 존재한다고 가르쳤다. 나의 참된 정체성은 '육체적인 나'가 아닌 '불멸의 영혼'이라는 것을 깨달은 영지주의 입문자들은, 나는 곧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되며,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바깥에 있지않다. 우리모두가 곧 그리스도(구원자)이며, 우리가 모두가 곧 부처이다."

 

"참된 그리스도교인이라면 그노시스, 곧 신비한 '앎'을 스스로 체험해서 스스로 1명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고 영지주의자들은 가르쳤다!"

 

[예수는 신화다]는 신약의 네 복음서가 목격자들의 이야기라는 전통적인 주장과는 전혀달리, 복음서는 사실상 고대 이교도의 신화-죽었다가 부활한 신인(神人)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를 유대인 식으로 각색한 것이라 주장한다.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던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미스테리아'를 유대인들이 받아들여 '예수 미스테리아'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죽었다가 부활한 신인" 개념의 '외형적' 유사함을 근거로 기독교와 이교도 미스테리아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데, 이것은 속임수이다. 신약학자 브루스 메쯔거의 지적처럼, 이 둘 사이의 형식적인 유사성이 그 내용에 있어서의 큰 차이점을 흐리게 해서는 안된다. 죽은신에 대해 말하는 모든 신비종파들에게 신은 '강제로 죽임을 당한것이지 죽음을 자처한 것이 아니며 때로는 비통과 절망속에서 죽었으며 결코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에 의해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봄이 다가오는 것(자연의 소생)을 상징하는 어떤 신의 재생과 역사적 인간의 '삼일만에' 부활한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오시리스, 디오니소스는 해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곡물(穀物)의 의인화에 불과하다.

 

이들은 예수는 이 세상에 존재했었던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인데, 이것은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사탄주의자 알레이스터 크롤리는 자신의 책 [영상과 음성]에서 예수 그리스도란 인물은 인간의 역사에 존재한 적이 없으며 단지 로마제국이 정치경제적 목적으로 여러 종교의 신들과 구세주 원형들을 편집 및 모방하여 만들어낸 신화적 캐릭터이자 허구의 존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예수와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던 유대인 역사저술가인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자신의 책 [유대 고대사] 18권 3장 3절에서 예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때에 예수가 등장하였는데 그는, 만일 우리가 그를 적어도 이렇게 부를 수 있다면, 현명한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놀라운 일들을 행한 사람이었으며 진리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선생이었다. 그는 많은 유대인들과 많은 헬라인들을 불러 모았다. 그는 그리스도였다. 빌라도는 유대인들 가운데 있는 지도자들의 고소로 그를 십자가형에 처했다. 하지만 그를 이미 사랑했던 사람들은 이로써 그들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서 그들에게 나타났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이것과 그에대한 수많은 다른 놀라운 일들을 예언했다. 그의 이름을따라 그리스도인들이라 불리는 이 지파는 아직도 존재한다."

 

요세푸스의 이 기록은 예수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인물이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있다. 요세푸스의 증언은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복음서의 저자들이 취향대로 지어낸 '신화'가 아니라, 당대의 역사가가 목격한 '사실'임을 보여준다.

 

 

예수의 동방 여행설

 

<가든 오브 에덴>(1998)은 예수에 대한 억지주장에 근거해 만들어진 영화이다. (..중략..) <가든 오브 에덴>은 예수가 페르시아, 인도, 티베트 등의 동방으로 여행을 했고 거기서 불교를 공부하여 불교에 입문했었다는 니콜라스 노토비치라는 사람의 주장에 근거한 것이다. 노토비치는 자신이 1887년에 히말라야의 라다크 지방의 레(Leh)라는 도시 근교에 있는 사원인 헤미스에서 예수가 동방에 왔었다는 내용을 담은 경전을 보았다고 주장했고 그것을 후에 책으로 발행했다. 이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에서 성스러운 아기가 태어나 이사(Issa)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사는 14세에 상인들을 따라 인더스 강 유역에 도착했다. 이사는 자신을 완성시키고 붓다의 진리를 배울 생각으로 아리안 족들 사이에 정착했다. 이사는 자가나트로 가서 베다를읽고 해석하는 방법을 배운뒤 노예계급인 수드라를 가르치는데, 계급에따라 인간을 차별하는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그의 가르침으로 인해 지위와 권력이 위협당하게 되었다고 느끼는 브라만 계급의 보복을 피해 네팔로 도망가 6년간 머무르면서 불교 경전을 연구한다.

 

한국에서는 1986년에 한양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민희식이 이 주장을 주간<중앙>에 "예수는 한때 불교 고승이었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인터뷰)으로 발표해 떠들석한 적이 있었다. 민씨는 지금도 이주장을 고집하면서 기독교의 기원이 불교라는 것을 밝히기위해 애쓰고있다. 그런데 그가 '진리'라고 믿고있는 노토비치의 주장은 이미 거짓임이 판명난 주장이다. 왜냐하면 저자인 노토비치가 그 문헌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이상 무슨말이 필요하겠는가. 또한 j. 아치볼드 더글라스 교수라는 사람이 직접 그 사원을 방문해 그런 문헌이 있냐고 물어봤을때 사찰의 주지승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런 책(예수 동방여행/불교유학 관련 서적)은 사원에 없다. (..중략...) 1880년에 출간된 작자 미상의 [예수-붓다]라는 책은 예수 뿐 아니라 사무엘, 이사야, 예레미야 등이 불교사원에서 가르침을 받았다는 황당한 내용을 담고있다.

 

 

힌두교 우주론

 

예수가 동방에 머물렀다가 주장하는 또 한명의 사람은 [보병궁(물병자리)복음서/ the aquarian gospel of Jesus The Christ]라는 책을 쓴 리바이 도우링(levi h. dowling)이다. 도우링은 이 책에서 예수는 일원론자였고, 모든 종교는 외양은 다르지만 모두 같은 신을 믿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예수가 동방에 머물렀었고, 이집트에서 피라미드 비전(피라미드 속에서 행해지는 입문식)의 7단계를 통과한후 '그리스도'가 된것이라고 주장하고있다.

 

"예수는 그가 애굽에 있는 헬리오폴리스의 밀의적 聖형제단(sacred brotherhood)에 입문하기전에 '저는 모든 지상생활을 더듬어보고 싶습니다. 널리 학문적으로도 추구해보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이미 오른 높은곳에 저도 오르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고통받은것을 저도 경험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이것으로 내 형제들의 비애, 실망, 가혹한 시련이나 시험 등을 알고 싶습니다.' 라고 말한것처럼 온갖 시련과 유혹과 고난을 통하여 1)성실, 2)정의, 3)신앙, 4)박애, 5)의열, 6)성애(聖愛)의 단계를 거쳐 7)The Christ(그리스도)라는 최고의 칭호를 얻게된다." (역자 서문)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않는다. 번역서의 부제에보면 '아카식 레코드'라는 용어가 나온다. 이 용어는 힌두교 우주론의 주장이며, 신지학회의 주장이기도 하다. 아카샤는 모든 생명체들의 생각과 의지, 감정, 경험의 모든것들이 담겨있다는 에너지 장(場)을 의미한다. 즉 지구가 모든것을 다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헬레나 블라바츠키도 자기가 아카식 레코드를 통해 예수의 어린시절에 대해 알고있다고 말한바있다.

 

도우링은 자신의 책은 자기처럼 수행을 통해 높은 경지의 영적능력을 지닌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영억인 아카샤에 접근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시절을 전부 받아적은것이라고 주장하고있다. 아카샤 추종자들은 아카샤는 실재하지만 너무나 미묘해서 그것이 명백한 세계에 거처하는 많은 것이 될때까지 감지될 수 없기 때문에 규율있는 영적생활방식과 요가를통해 아카샤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이없는 이론인 이 힌두교 우주론은 신과학 지도자인 데이비드 봄같은 사람에 의해 여전히 추종되고 있으며, 추종자들은 이것을 양자진공이라고 부른다. 양자진공이 물질의 역사적 경험을 기록하는 홀로그램 정보장이라는 것이다.

 

도우링은 이 책에서 신약성경에 나타난 예수에 대한 묘사는 거짓이며(모든 이교주의는 성경에 대한 불신앙에서 출발한다), 예수는 본래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며, 인간인 그가 인도에서 깨달음을 경험하고 이집트에서 오컬트 의식을 통해 도통하게 되어 결국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주장을 한다(영화 <몬트리올 예수>는 "예수는 청년시절 이집트에서 마법을 배웠다" 라는 말로 시작된다). '인간이 신'이라는 뉴에이지운동의 주장을 전파한 존재가 예수라는 것이다. (...중략...) 예수에 대한 이와 같은 주장들은 모두 정경에 대한 거부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들의 신앙적 전제가 성경에 대한 불신이기 때문에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것이다.(이하 생략...)

 

 

뉴에이지의 속임수에 대한 비판전체를 보려면, 온오프라인서점에서 구매하면된다.

 

김태한 목사님의 저서, '뉴에이지 신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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