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노동자들의 작업은 AI로봇들이 대신 맡아서 일하는 시대의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로봇(robot)이라는 영어단어와 비슷한 체코어로 robota[로보타]라는 단어의 의미가 법정노동(강제노역)을 의미하고 또한, robotnic과 robotnica는 각각 남녀노동자들을 의미한다고 한다. 결국, 로봇(robot)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본질은 '노동'(일)과 관련된 단어이다. 그래서 특히, 생산직에서 기계적으로 일하는 능률및 효율성은 인간보다 AI로봇이 더 효과적이다. 지루한 반복이 계속되는 단순노무는 물론이고, 힘쓰는 일하며 심지어 야간 연장근무도 무리없이 가능하다. 각설하고, 로봇(robot)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체코어에서 강제노동(법정노동)에서 나온 신조어이며 '일하다' 라는 의미의 고어(체코어) 로빗(robit)하고도 연관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예를 더 들면, 화장품 브랜드와 관련하여 시크릿(seacret)이라는 신조어는 바다를 의미하는 sea와 비밀을 의미하는 secret을 조합및 융합되어 탄생된 신조어이다.
정리하자면, 각각의 신조어로의 언어적 진화도 어원을 파고들면 전혀 새로운 것이라기 보다는 시대변화에 따라 조금씩 변형되고 의미가 추가되거나, 전혀다른 의미의 비속어로 쓰이면서 쓰임새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단어와 단어가 조합되어 기묘한 뉘앙스의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블로그 언어공학 카테고리의 글들에서는 넌센스적인 언어사용 및 비속어 활용 등으로 언어세계관의 확장을 시도해 신언어학의 지평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단어와 단어를 조합및 융합해 새로운 조어가 만들어진 사례는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시인은 운율을 활용하는 재능은 물론이거니와 언어적 감성과 언어적 창의성도 요구되는데, 그런면에서 볼때, 다윗의 시편은 언어창작의 클라이맥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시편은 초보신자들도 읽기 쉬운 책이지만, 영적인 지혜와 명철을 받은 장성한 신자들이 읽으면, 심오한 비유와 비사로 기록된 예언서이며, 나름대로 질서와 체계가 규칙적인 구조로 구성된 바 있으며, 언어구조적인 예술성도 반영된 그야말로 삼하23장 1절 말씀에서 다윗왕이 예언한 대로 '감미로운 시편'인 것이다. 다윗왕의 시편 예언은 다윗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조물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구원을 예언한 환상의 비유이기도 하며, 교회의 고난과 구원을 계시한 비밀의 말씀이기도 하다.
올바르고 건전하게 표현된 언어예술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뜻깊은 언어적 가치를 지닌다. 단어의 중의적 의미의 활용 및 응용과 단어들의 적절한 조합으로 융합시켜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는 수많은 문장을 창작해내며, 멋진 신조어와 명문장 그리고 문화예술 작품 속 명대사의 생성도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 언어의 개념을 세련되고 우아하게 표현하는 기술이 바로 언어예술이며, 이는 음악, 미술, 문학, 철학, 윤리학, 기타 예술, 스포츠이론 등등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결국 언어예술은 문화의 한 축을 차지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언어예술은 '동물국회'라는 오명을 쓴 정치의 개혁에도 다소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언어예술이 사회적인 선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결국 정치적으로도 크던 작던 긍정적이고 건전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신조어는 언어예술의 산물이기도 하다. 언어를 신비스럽고 아름답게 창조하는 기술(기교)이 바로 언어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조어는 한 시대를 풍미하기도 하고, 처음에는 신조어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또는 너무 시대를 앞서가는 새 단어라 그다지 호응을 얻지못하다가, 후대에 가서야 그 워딩밸류를 인정받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신조어는 그 자체로 인간이 행동지침으로 삼는 사상의 핵심(예>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하면 된다') 또는 종교적 신앙의 대상(예> 기독교인들의 유명한 명언 '오직 예수')이 되기도 한다. 위인들의 참신한 한줄 명언들이 독자들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송두리째 바꾸는 케이스도 흔하게 접해볼 수 있다. 그래서 말(언어) 그 자체의 워딩파워는 어떤 식으로든 권능과 권위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그 힘과 위엄에 있어서 상대적인 차이의 정도가 있을 뿐이다. 또한, 누가 말했느냐에 따라 말의 권세가 달라진다. 조물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 한마디가 병자들을 치유하고 가난한 제자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배불리 먹일 수 있는가하면,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한 국가의 존폐를 좌우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남녀노소 누구나가 누릴 수 있는 언어의 특권을 가진 현대인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이 언어능력의 개발과 건전한 신조어의 창작으로 인류의 편리하고 이로운 생활과 이타적인 문명발전에 기여하는 일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도 거져 주어지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때 독립운동이라든지, 군사독재정권때 광주 민주화운동 등 선배들의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한 헌신과 투쟁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여러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한국어라는 과학적이고 영적인 영감을 갖춘 탁월한 언어를 누릴 수 있는 것도 세종대왕 시대에 창제된 언어 덕분이며, 특히 일제강점기때, 일본의 언어지배(언어말살) 야욕에 항거하며 대한민국 독립과 한국어 독립을 지켜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나부터 이 블로그 언어공학 카테고리에 언어공학 시리즈 게시글을 이어감으로써 대한민국 언어발전에 작은 보탬이 되고자 하였고, 머지않은 시기에 언어공학 17 이라는 제목의 글로 새로 시작하며 그 시리즈를 천천히 다시 이어가고자 한다. 물론, 이 시리즈를 연재하는 주목적은 복음전도글도 조금씩 포함시킨것을 포함한걸 봐도 알 수 있듯이 '기독교복음전도' 이지만, 언어과학적 분야에 달란트를 갖춘 평신도로써 세상을 더 선하게 더 참신하게 더 유익하게 바꾸고자 의도한 목적도 있다. 이 두가지 목적 모두 더 좋은 세상을 지향하고자 한 의도는 같다.
신언어학 게시글 시리즈를 이번 글로 끝맺고 슬슬 마무리하고자 한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필수 수단이면서 또한 언어의 3요소인 소리와 의미와 문자(기호)의 3박자가 시너지효과를 이루어 창조되는 특별한 문화예술이며, 음악이나 영상이나 문학적인 글 또는 도덕윤리적인 글이나 철학적인 글 등 여러 매체와 전달수단으로도 언어의 표현이 가능하며, 특히, 케이팝 등 노래에서는 몸의 동작으로 표현하는 제스쳐 라든지 퍼포먼스 등등을 추가하여 언어의 감성을 살리고(특히 가수들의 댄스와 음악예술과 노랫말이 융합되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것 등...) 노랫말 속 언어의 메세지를 시청자들에게 더욱 생동감있게 전달할 수 있다. 특히 글로 표현되는 문학과 윤리학과 철학분야도 언어를 수단으로 표현되는 문화예술이다. 그런면에서 볼때 운율이 들어간 언어인 시(시편)는 언어적 리듬에 있어서 음악적인 체계적 질서가 있는 음악구조적인 언어예술이며, 이것을 노랫말로 작사하여 대중가요화 시키면 힙합랩 가사로 쓰일 수 있다.
그리고 세계공용어 영어보다 존댓말 화법이 매우 발달한 한국어는 그 언어적 기품과 품위의 면에서도 영어보다 훨씬 매너와 예절을 세심하게 표현하기가 수월하므로 확실히 영어보다는 한국어가, 윗사람가 아랫사람과의 의사소통문제로 인한 갈등이나 문제가 적다는 이점이 있다. (한국의 상징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명예도 한국어의 힘이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은밀한 비유와 상징 즉 은유적 언어표현 역시 영어보다 한국어가 더 자유롭다. 예를들어 신세대 인재들을 "꿈나무"라고들 흔히 말하는데, '꿈'과 '나무' 라는 두 단어를 조합및 융합해 전혀 다른 의미의 은유적 신조어를 만들어 내는 것도 그 예다. 이것을 영어로 직역('의역'이 아닌..)하면, 드림 트리(Dream Tree) 정도의 조어로 표현 가능하지만, 이러한 콩글리쉬적인 듣보잡 조어를 신세대 인재 또는 차세대 고급인력이라는 식으로 쉽게 의역하는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는가? 즉, 꿈나무 라는 신조어를 영어로 재치있게 번역(의역)하려면 다르게 표현해야 한다.(영어사전 검색해보니, 꿈나무를 의역하면 '미래'를 뜻하는 future와, 후배 또는 청소년을 뜻하는 junior라고 한다.)
이는 언어적 표현의 창의성, 자유성, 다변성, 상징성이 영어보다는 한국어가 더 뛰어남을 증명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한국어를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언어기능학적 한국어 교육을 심화하고 더 전문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 4가지 언어기능학적 교육 모두 균형적으로 개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좋은 신조어를 위해 모국어부터 기본실력을 어느정도 익히되, 그것을 베이스로 하여 외국어 한두개 정도 잘 배우는 것이 언어창작력 향상에 유익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외국어를 공부하기전에 한국어부터 잘 사용할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어 공부도 양보다는 질(퀄리티)이다. 다시말해서, 다양한 여러 외국어를 배우기보다 한두개 주요 외국어를 선택해 제대로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언어창작의 영감이 나온다. 물론, 나머지 여러 생소한 외국어의 비슷한 철자의 단어 즉 예시로 앞서말한 영어의 robot과 체코어의 robota 라든지의 경우, 서로 비교해보며 참고로 할 수 있다. 이를 전문용어로 비교언어학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며, 이러한 연구도 참신한 작업이 될 수 있다. 신언어학의 정의는 이번 글을 끝으로 마치며, 언어공학 글의 게재를 다시 시작함으로써 그 언어공학 사역을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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