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복음

도마복음 37절.

가스펠 크리에이터 2023. 10. 2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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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His disciples said, "When will you become revealed to us and when shall we see you?" 

Jesus said, "When you disrobe without being ashamed and take up your garments and place them under your feet like little children and tread on them, then will you see the son of the living one, and you will not be afraid" 

제자들이 묻기를 “당신은 언제 우리에게 드러낼 것이며 언제 우리가 그런 당신을 볼 수 있겠나이까? 예수께서 말씀하길,  ”그대들이 어린아이처럼 부끄럼 없이 옷을 벗어 집어 들고는 발밑에 두고 밟을 때 그대들은 살아있는 분의 아들을 보게 될 것이며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 

 

 

 

22 Jesus saw infants being suckled. He said to his disciples, "These infants being suckled are like those who enter the kingdom." 

They said to him, "Shall we then, as children, enter the kingdom?" 

Jesus said to them, "When you make the two one, and when you make the inside like the outside and the outside like the inside, and the above like the below, and when you make the male and the female one and the same, so that the male not be male nor the female female; and when you fashion eyes in the place of an eye, and a hand in place of a hand, and a foot in place of a foot, and a likeness in place of a likeness; then will you enter the kingdom." 




예수께서 젖먹이 아기들을 보고는 제자들에게 "이 아이들은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과 같도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러면 우리도 어린아이처럼 하늘나라에 들어가겠나이까?" 라고 물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하길, "너희가 둘을 하나로, 안을 바깥처럼, 바깥을 안처럼, 위를 아래처럼 만들 때, 남자와 여자를 하나로 만들어 남자는 남자가 아니고 여자는 여자가 아닌 것으로 만들 때, 눈이 있는 자리에 눈들을, 손이 있는 자리에 손을, 발이 있는 자리에 발을, 닮은 것이 있는 자리에 닮은 것을 만들 때, 그대들은 천국에 들어가리라." 

 

 

이어서 37절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드러나는 때는, 어린아이처럼 옷을 벗어 밟을때 하나님의 아들을 밝히 보고 두려워하지 않을거라 하였습니다. 우선, 어린아이의 특성은 순수하고 겸손하며 진실하여 거짓이없고 뿐만 아니라, 옷을 벗어도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이는, 아담과 이브(하와)가 선악과를 먹기전의 성품이기도 합니다. 비록 선악과를 먹기전인 그당시에 둘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말은,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말이고 사랑의 기쁨으로 가득하여 하나님과 자유로운 언어적 교제와 소통이 가득했다는 해석도 할 수 있으며, 선악지식의 관념이 아닌, 단순하고 간단한 상식을 가지고 천진난만하게 에덴동산을 거닐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벌거벗었는데도 부끄럽지 않았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었다(롬13:14, 갈3:27) 라고도 해석할 수도 있는데, 이는 영화로운 빛의 옷이자 영적 예복으로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를 그리스도로 옷입었다고 표현할 수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어린아이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겸손한 자)들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고 거듭 말씀하셨으므로,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정죄하게 하지만, 성령의 은혜는 겸손하고 진실한 성품으로 단련시키고 교회를 세워주고 이웃사랑을 실천하게 하기때문에 영존하는 생명의 기초를 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식이 아니라, 지식의 원천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충만을 받아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지식적으로는 부족하지만,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특히 유아일수록 벌거벗음을 챙피해 하지않으며 모든것을 순수하고 단순하게 보며 천진난만하게 행동합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요한복음 8장 말씀에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한것처럼, 참된 길(道)이자 진리이자 생명은 그 자체로 자유를 상징합니다. 육체의 지혜가 아닌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머리로 학식을 짜낼 필요가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이 보내신 보혜사(위로자) 성령의 계시를 그때그때 받아서 복음을 선포하고, 믿음의 분량대로 받은지혜대로 복음을 전도하거나 책으로 쓰거나 여러 기독교 사역으로 활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같은 순수함으로 담대하게 부끄럼없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그리스도를 전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담력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그리스도로 옷입은 힘에서 나온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어떤 정신적 물리적 힘을 외부에서 얻었을때 '힘입었다' 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야말로 부드러운 피부와 생기로 가득한 어린아이는 그야말로 그리스도의 생명력으로 힘입어서 부끄러움이 없다 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지적 능력은 아직 교육과 양육이 필요하겠지만, 그리고 신체발육도 아직 미숙하지만, 아이는 거짓이 없고, 선악을 모르며, 벌거벗은 상태여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단순함으로 기뻐 뛰놉니다. 지식의 힘을 능가하는 힘은, 이스라엘의 힘이신 주님(삼상15:29)의 생명기쁨입니다.

 

그리고, 문자적인 지식이나 고정관념을 초월하여 둘을 하나로, 안을 바깥처럼, 바깥을 안처럼, 위를 아래처럼 만들 때, 남자와 여자를 하나로 만들어 남자는 남자가 아니고 여자는 여자가 아닌 것으로 만들 때, 눈이 있는 자리에 눈들을, 손이 있는 자리에 손을, 발이 있는 자리에 발을, 닮은 것이 있는 자리에 닮은 것을 만들 때 어린아이처럼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즉, 그것은 뉴에이지 교리에도 일부 있는 내용입니다. 둘을 하나로 만들라는 것은, 선악의 이원론을 초월하여 올바른 일원론적 통찰력을 의미하는데, 뉴에이지의 일원론은 모든 것이 하나님이라는 교리가 오류입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이 아닌, 오직 조물주가 하나님.) 그래서, 뉴에이지가 아닌 기독교의 관점에서 둘을 하나로 만드는 진리를 해석해야 하는데, 이는 선악과(善惡果)의 지식에서 벗어난 생명열매의 지혜를 의미합니다. 생명의 진리는 단순합니다. 기존의 선악관념이 아닌, 어린아이같은 순수함으로 진리를 인식해 자연스러운 언행을 하는것이 극단적인 선으로서의 위선도 아니고 극단적인 악으로서의 사악함도 아닌 올곧음의 판단력으로서 의롭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깥을안처럼, 안을바깥처럼, 위와아래를 동일하게하고 그리고 남성성과 여성성을 초월함으로 양면적 이중성을 발견하고 각각 제자리에 올바른 지식을 배치하여 깨달아 알때 어린아이처럼 되어 천국에 입성한다고 합니다. 시편 119장 18절에, 내 눈을 열어주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님의 법의 경이로운 것들을 보리이다. 라고 한 예언이 성취되면 어린아이처럼 되어 천국축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덧입던 세상 옷을 벗고, 그리스도(道/진리/생명의말씀; 요한복음14:6)로 옷입으면 세상적인 물질의 사치나 부유함이나 맛집여행이나 미디어중독이나 또는 철학과 헛된 속임수(골2:8)에서 벗어나, 위대한 복음을 보화처럼 존귀하게 여기고 오직 모든 세속적 소유를 팔아서,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감춰진 그리스도의 복음의 밭을 구매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보화가 감춰진 밭을 사야합니다. 돈보다도 그리스도의 보물이 더 귀합니다. 심지어 세계를 지배하는 엘리트인 유대인들의 탈무드를 읽어보면, 물고기를 잡아주지말고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치라는 교훈이 기록되었습니다. 물고기는 재물을 상징합니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이란 지혜를 상징하며 특히 주식하는 자들에게는 재테크(재물을 버는 기술)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과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 둘중 어느것에 투자해야 미래전망이 밝겠습니까? 재물은 사용하면 없어지지만, 지식과 재테크는 평생재산입니다. 그러므로, 가치있는 귀한 정보를 가르치는 것이라면 수억수조원을 주는것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말의 지혜의 힘은 천금보다 훨씬 더 귀하기 때문에, 우리 옛 조상들은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는 속담까지 창작해 우리 후손들에게 교훈으로 주셨던 것입니다. 벌거벗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그리스도로 옷입어, 선악과의 지식이 아니라 생명과의 지혜를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깨달아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이웃사랑의 계명을 실천하여 열매맺고 다 익으면 그때가 수확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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